이슬람, 원리주의, 테러리즘의 구별
“이슬람은 원래 타 종교와 문화에 대한 인정과 이해가 깊었던 관용의 종교다. 교리상으로 모세와 예수를 선지자로서 인정하고 있고, 단지 마지막 선지자인 무하마드를 믿는 이슬람이 가장 정통적이라는 것만 강조한다.
그러나 근대에 들어서 서구의 눈부신 발전은 이슬람세계에 강력한 도전이 됐다. 이슬람인들 중 일부는 하나님의 마지막 대리인인 무하마드를 믿는 자신들이 제일 발전해야 하는데도 서구에 뒤지는 이유가 무하마드의 교리를 정확히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이에 따라 무하마드의 기본정신으로 돌아가는 것이 바른 길이라는 원리주의(근본주의·fundamentalism)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특히 이란에서 시아파 호메이니 혁명이 일어난 뒤 원리주의자들의 주장이 강해졌다.
원리주의자 중 일부는 서구에 대한 분노와 좌절감으로 테러에 귀의하는 데 이것이 반(反) 이스라엘 투쟁과 더불어 오늘날 이슬람 테러리즘의 배경이다. 그러나 이슬람세계 중에는 근대화와 세속화에 어느 정도 성공해 세계체제에 순조롭게 편입하려는 터키와 같은 경우도 있다. 따라서 이슬람과 이슬람 원리주의는 동의어가 될 수 없고, 또한 이슬람 원리주의자들 중 일부가 테러리스트가 되는 경우가 있을 뿐 이슬람 원리주의와 이슬람 테러리즘이 동의어가 돼서도 안 된다.
◇ 이슬람 무장단체의 역사
‘지하드’는 원래 하느님(알라)의 뜻에 복종하는 삶을 살기 위해 싸운다는 뜻이다. 종교적인 의미가 짙은 지하드를 현재와 같은 무장투쟁 세력으로 바꾼 것은 20세기 초 반영(反英) 독립운동을 벌였던 이집트의 ‘무슬림형제단’이다.
1928년 이집트의 하산 알반나가 설립한 무슬림형제단은 아랍 전역으로 퍼져나가 아랍 국가들의 정치와 종교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는 대중조직으로 발전, 지금도 활동하고 있다. 알반나는 코란을 바탕으로 한 ‘진정한 이슬람’으로의 복귀를 주장, 이슬람 부흥운동(이슬람 근본주의)의 이론적 토대를 만들었다. 81년 친미(親美) 노선을 표방한 안와르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을 암살한 것도 이들이다.
그러나 이슬람 교리 자체가 유혈투쟁을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며, 자살테러 같은 극단적인 무장투쟁은 이스라엘과의 관계 속에서 살펴봐야 한다. 1948년 이스라엘 건국 뒤 아랍국들은 두 차례 중동전쟁을 일으키지만 패전한다. 67년 3차 전쟁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싸움을 전 아랍권으로 광역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그 여파로 많은 이슬람 운동세력들이 강경노선으로 전환됐다. 73년의 4차 중동전쟁에 이은 중동평화협상을 둘러싼 이슬람 내 노선 갈등은 하마스 같은 무장단체들의 활동을 부추겼다.
현재 이슬람 무장조직으로는 헤즈볼라나 하마스 외에도 현재 이집트의 ‘자마아트 이슬라미야’, 알제리 무장무슬림그룹(GIA) 등이 있다. 이스라엘에는 유대 테러조직 ‘카흐와 카하네차이’가 있는데, 극우 시온주의자 메이르 카흐네가 창설한 이 조직은 94년 헤브론에서 팔레스타인인 29명을 살해했으며 95년 이츠하크 라빈 총리를 암살했다.
◇ 사우디 아라비아와 과격파
사우디는 ‘오일 머니’로 부를 누려왔고 친서방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한 국가다.
그러나 18세기 이슬람부흥운동 중 하나인 와하비야운동(와하비주의라고도 함)은 이슬람 원리주의의 중요한 흐름 중 하나이자, 사우디의 건국이념이었다. 무하마드 빈 압둘 와합의 주도로 일어난 이 운동은 이슬람의 정신적 쇠퇴를 비판하고 이슬람의 원래 정신으로 돌아갈 것을 주장한다. 그의 사상은 18세기중엽 사우디의 건국 시조 이븐 사우드라는 정치지도자를 만나 꽃을 피운다.
사우디는 비록 친서방적이지만 국민들의 생활은 와하비주의에 기반한 엄숙주의, 배타주의, 그리고 혁신에 반대하는 극도의 보수주의 영향권 내에 있다. 이러한 풍토는 서구와 서구식 근대화에 반대하는 원리주의자들이 생겨나는 토양이 돼 일부 과격파가 생겨나게 했다고 할 수 있다. 예멘 출신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사우디에서 성장한 오사마 빈 라덴이 대표적인 예다.
◇ 아프가니스탄과 원리주의의
“아프가니스탄이 19세기 이슬람 부흥운동의 가장 중요한 사상가인 자말 알딘 알 아프가니(‘알 아프가니’는 아프간 출신이라는 뜻)의 출생지인 것과 관련이 깊다. 그는 서구의 과학과 기술을 부분적으로 받아 들여야한다고 믿었으나 기본적으로 서구의 영향력에 저항한 반제국주의자이자 이슬람권이 뭉쳐야한다고 주장한 범이슬람주의자였다. 그는 아프가니스탄 뿐 아니라 이슬람 전 지역을 돌아다니며 그의 사상을 설파해 큰 호응을 얻었다.
근현대에 들어서 아프가니스탄은 전략적 위치 때문에 서구 강대국들의 침탈의 대상이었다. 특히 소련이 허약한 나지불라 공산정권을 돕기 위해 1979년 시작한 전쟁은 아프간인들에게 수니 계열의 이슬람 원리주의를 강화시키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강규형박사/연세대 통일연구원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