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Mr. Melvin E. Matthew (2003)
이슬람과 이슬람주의는
근본적으로 신앙(이슬람)과 관념(觀念, 이슬람주의)으로 한벌의 개념이다.
테러와의 전쟁에 대하여 중동 전문가인 Jonathan Schanzer는 “테러와의 전쟁은 후기 군사적인 이슬람과의 전쟁”, “종교적인 신앙의 일부 부산물”, “절대로 용납될 수 없는 자본주의, 개인주의 , 소비주의 서구의 개념”이다. 따라서 과격주의 이슬람은 서양과 무기, 의료, 그리고 추가적인 유용한 기술 등의 서양의 제안을 거절했다. 과격한 군사적 이슬람의 목표는 코란의 철저한 해석과 이슬람법(Sharia)을 실행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과격주의 무슬림의 관점에서 자신들의 목적을 실현을 위한 중대한 장애는 바로 미국이다라고 말했다.
이슬람은 A.D. 610년에 무하메드가 자신의 거룩한 임무와 한분이신 알라에 대한 것을 강조하는 새로운 종교에 대한 알라의 명령을 받음으로 시작되었다. 이슬람이 무슬림들에게 관심을 끌었던 것 중의 하나는 내면적인 힘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이슬람을 이해한다는 어떤 서양 사람도 무하메드의 삶을 선망할 것이다라고 이란 사람들은 말한다. 무슬림은 자신의 신앙은 유대교, 기독교 보다 월등하다고 믿는다. 유대교와 기독교는 자체의 한계와 문제를 지닌 진정한 종교의 변형으로써 이슬람 만이 알라의 최고의 종교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우월주의에 대한 확신은 이슬람의 초기 역사 중에 형성되었다. 그리고 이슬람 문화 역시 세계적으로 가장 발전된 문화를 자랑했었다. 따라서 무슬림은 가장 좋은 건강, 가장 낮은 문맹률, 높은 기술력 등을 자랑했었다. 무하메드가는 A.D. 622년 메카를 떠나 메디나로 피신했고 8년 후에 다시 메카로 돌아왔다. 715년 무슬림은 서쪽으로는 스페인, 동쪽으로는 인도에까지 장악하는 커다란 제국으로 성장했었다. 따라서 무슬림은 자신들은 영적으로난 물질적으로나 알라가 선택한 백성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이러한 이슬람 제국의 황금기가 영원하지는 못했다. 13세기 초 이슬람 세력은 약화되었고, 기독교 세계의 성공은 시작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슬람 제국은 500년을 지속했다. 이 당시 무슬림은 기독교권에서 무슨 일이 발생하고 있는지 알지 못했었다. Ibn Khaldun 1400년경 유럽에 대하여 “나는 그곳에서(루마니아) 많은 발전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들었으나 그러나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오직 알라만이 알수 있는 것이었다.”라고 기록했다.
이러한 글을 통해 우리는 기독교권, 유럽에서의 엄청난 변화, 발전을 인식하지 못했다. 1798년 7월 나폴레옹은 무슬림권인 도착 예정일 보다 일찌 이집트에 도착했다. 이것은 종국에는 대부분의 무슬림이 유럽의 지배 아래 놓이게 되는 그리고 무슬림권이 왜 알라가 이러한 일을 자신들에게 허락했는지 궁금해하는 도전의 시작이었다.
이슬람주의자는 여러 나라에서 폭력적이다. 그들은 알제리아, 터어키, 이집트, 말레이시아 등의 무슬림 통치자들이 자신들의 운동을 짖밟으며 서양의 명령에 따른다고 주장한다. 카시미르(인도와 파키스탄의 분쟁지역), 아프가니스탄, 수단 등에서 이슬람주의자들은 서양은 이슬람 공동체를 세우려는 이슬람주의의 고귀한 노력을 제압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또한 서양으로 인해 자신들이 혼란에 빠져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슬람주의자들의 주적에는 무슬림권의 자원을 강탈, 빼앗아 자신들의 유익으로 삼으며 이슬람을 뒤엎어 버린 미국이 있다. 더 구체적으로 워싱톤과 헐리우드가 연합해 “새로운 세계”를 꿈꾸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현대화된 무슬림 공동체를 향한 반항보다 왜 이슬람주의가 인기를 끌고 있는가? 프랑스인 한 학자는 이슬람주의는 현대화된 무슬림 공동체로부터 태어났다고 주장하며 다른 학자들은 이슬람주의는 중세의 프로그램이 아니며 20세기의 압박과 왜곡에 따른 부산물이다라고 주장했다. 이슬람주의는 가난에 대한 반항이 아니다. 이슬람주의의 지도자들은 대부분 현대화된 인물이며, 이슬람은 대부분이 현대화된 사람들 속에서 나타났다. Daniel Pipes는 1998년 많은 이슬람주의 지도자들이 터어키와 요르단에서 전문직인 엔지니어들었다고 언급했다.
전통적인 이슬람의 목표는 인간이 어떻게 알라의 뜻을 따라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지를 보여려하지만 이슬람주의의 목표는 이슬람 세계를 향한 새로운 질서를 창조하는데 있다고 Pipes는 주장했다. 또한 전통주의자들은 이슬람을 오랫동안 연구해왔다. 그러나 이슬람주의 지도자들은 이슬람보다는 과학을 더 잘 아는 사람들이며, 자신들의 목적에 시대를 이용하는 것이다. 같은 방법으로 이슬람주의는 현대사회를 자신들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수단으로 수용한 것이다. 그에 반하여 전통주의자들은 현대 사회를 거부한다. 전통주의자들은 서구를 불안스런 눈으로 바라보지만. 이슬람주의자들은 서양에 대항해 서양을 정복하길 원한다. 또한 온건한 이슬람주의자들은 비폭력을 통해 서양 속에서 자신들의 삶의 영향력을 증가시켜 비이슬람 나라들을 이슬람으로 전환 시키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처음으로 이슬람주의가 프랑스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18세기 중반이었으며, 무슬림의 종교인 이슬람의 동의어로 사용되었다. 프랑스어 ‘mahometisme'(무하메드교)는 무하메드가 선언했고 가르쳤던 종교를 가르킨다.
이것은 새로운 자발성, 르네상스로부터의 탄생, 기독교과 같이 이슬람을 하나의 종교로 인식한다는 의미이다. 그러한 이러한 관점은 기독교에서 예수님의 가치와 비교해서 무하메드가 이슬람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다르다. 그러함에도 아직도 유럽에서는 동일한 사고가 널이 용납되었다.
프랑스인 철학자 Voltaire는 이슬람에 엄청난 관심을 갖었었고, 다른 종교와 자주 비교했었다. 또한 그는 이슬람의 무하메드의 역할에 관심이 많았었다. Voltaire가 서술한 “종교(The Religion)에서 그는 이슬람은 이슬람(프랑스어로 islamisme)라고 했다. 그는 이슬람은 그 특유의 열심과 설득으로 지구의 절반이상을 차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무하메드주의 이전에 이슬람 역시 유럽에서 하나의 사실로 받아 들여졌다.
아직도 Martin Kramer는 19세기에 이슬람과 이슬람주의의 사용를 구분한다. 첫번째로는 이슬람의 교리를 보다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으로 나타내지만 실제로는 이슬람의 특성에 대한 비판적인 평가를 제외시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둘째로는 어떤 학자라도 이슬람주의와 이슬람은 무하메드주의(Mohammedianism)와 무하메드를 완벽하게 나타내지 못한다. 단지 중세에 사용했던 이 단어를 이제는 더 이상 사용하지 않고 있다. 기본적으로 서구의 저자들은 무슬림이 자신들의 글을 읽고 기분나빠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았다. 이슬람주의는 또한 20세기 초에 그 사용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수 많은 학자들이 보다 짧은 아랍어식 표현인 이슬람을 선호하게 되었다.
이슬람주의라는 용어는 종교로서 전통 이슬람으로부터 현대적인 사고의 다른 이슬람을 표현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또한 1979년 이란에서의 이슬람 혁명이 있을 후 호전적, 군사적인 이슬람을 구분해야할 필요가 나타났으며, 이슬람 근본주의자(Islamic fundamentalism)라는 용어를 사용하게 되었다. 근본주의라는 단어는 1990년대 빠르게 확산되는 이슬람을 설명하는 단어었다. Concise Oxford English Dictionary 에는 근본부의를 “전통적인 개신교의 신앙을 강력하게 고집하는 것”, “조상들의 혹은 어떤 종교든지 초기의 교리를 강력하게 고집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풍자적으로 언론이 이슬람 근본주의를 사용했고, 이슬람 학자들은 흩혀 보기만했다. 일부 학자들은 근본주의라는 말이 이란의 혁명의 방법과 형태 그리고 유사하 다른 무슬림의 운동을 잘 표현하지 못한다고 생각했고, 새로운 무슬림 운동에 동정적인 다른 일부 학자들은 근본주의라는 말이 진화하는 무슬림에 합당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아직도 근본주의라는 단어에 대하여 학문적으로 논란이 있다.
프랑스는 새로운 전문용어를 만들어 냈다. 1970년대 새로운 무슬림 운동을 표현할 단어를 찿던 중 프랑스 학자들은 이슬람을 첫번째로 꼽았다. 왜냐하면 미국 성향의 근본주의라는 단어보다는 프랑스어에서 출발한 Voltaire가 사용했던 ‘이슬람’이란 단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둘째로는 프랑스어를 또 다른 단어 ‘intergrisme(islamic, 이슬람의)’라는 단어 사용을 기피하는 것도 있다. 이 단어는 천주교의 형태를 지니고 있으며 교회의 권위를 걱정하는 논란의 한 부분이기도 하다.
1985년 이슬람은 영어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1984년 Gilles Kepel의 책으로 “Les Mouvements Islamistes dans I’Egypte Contemporaine”라는 부제를 붙였던 책이 “이집트에서의 무슬림 과격주의(Muslim Extremism in Egypt)”라는 영어 제목으로 번역되어 출판되었다. 번역자는 이슬람을 이슬람주의자로 번역했다. 그리고 관주에 이슬람주의자란 프랑스어 이슬람(islamiste)으로부터 번역되었다. 이 이슬람주의자라는 표현은 이 책이 번역을 마치기까지 그리 널리 사용되지 않았었다.
이슬람주의는 1994년 중동(Near Eastern) 책임자였던 Robert Pelletreau에 의해 공식적인 용어가 되었다. 이슬람 근본주의는 필수적인 위협과 함께 사용되기 시작했고, 이슬람주의는 넓게 이슬람의 부활을 기대하는 표현으로 사용되고 있다.
무슬림의 군사적인 폭력은 어떤 단어를 사용하던 이슬람에게 오명을 씌웠다. 이슬람주의는 20세가 다른 위협이 되어 자유 서방과 충돌하는 모습이 되었다. 서방의 비난자들과 같이 새로운 이슬람 운동의 지도자들 역시 근본주의라는 단어를 경멸한다. 레바논의 Hizbullah의 정신적 지도자인 Ayatollah Muhammad Hussein Fadlallah는 ‘이슬람 운동’보다는 ‘무슬림’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이와같이 무슬림의 미래에 대한 행동 역시 의심할여지 없이 무슬림 자신에 대하여 새로운 설명을 가져다 주고 있다. Martin Kramer는 그의 책 “The Pressures”에서 미래에 무슬림의 행동은 두가지 나타날 것이다. 첫번째는 18세기에 이어 20세기에도 이슬람이 두배로 증가한 프랑스를 이슬람의 이론이 삼킬 것이다. ‘neofondamentalisme’로 알려진 후기이슬람(PosetIslam)이 대중 속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 후기이슬람을 따르는 사람들의 사색적인 특징은 이슬람으로 전환된 사회의 대중적인 인기의 힘을 얻으려는 것은 아니다. 둘째로는 다른 단어 지하드주의(Jihadism), 군사적인 이슬람 그리고 호전적인 무슬림은 2001년 9/11 테러를 통해 통합되었다.
전문용어 사용에 대한 논란은 항상 이슬람과 관련해 서구에서 일어났다. Kramer는 실제적인 이슬람 나라를 표현하려는 서구의 필요를 정확하게 드러내고 있다. 서구는 무슬림을 이교도 혹은 신앙인 혹은 위협 혹은 평화적, 외국인 혹은 친밀한 등으로 구분해야하는 필요가 있었다. 현대 이슬람 속에서 서구가 아직도 혼돈하는 중에 어떤 단어가 정확한 표현으로 자리잡을지를 예측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것은 앞으로 무슬림이 무엇을 하며 진정으로 서구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가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