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ewart. How are you doing ? Bromley: STL Books, 1984)
우리는 자주 모국에서 외국을 바라보면서 선교는 오직 하나님의 분명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 감당할 수 있는 매우 특별한 사역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에 신약성경에서 가르치는 “어떻게 선교에 참여해야 되는가”하는 제자훈련의 기본적인 성경의 가르침을 살펴본다.
6.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요한복음 15장16절)
여기의 ‘과실’은 단순한 성령의 열매는 아니다. 왜냐하면 이 구절에서는 열매를 위해 어떤 곳으로도 가라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구절은 우리의 삶의 영향력과 연관되어 있다. 왜냐하면 열매는 최후에 얻어 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것은 단지 우리의 삶의 영향력 또는 다른 사람에게 증인이 되는 것을 나타낸다.
“가라”는 땅과 바다를 가로질러 잃어버린 사람들을 향해 다가가는 함축된 의미가 있다. 예수님은 분명하게 그의 제자들에게 ‘추수의 정신’을 가질 것을 격려하셨다. 그는 요한복은 4장 38절에서 “내가 너희로 노력치 아니한 것을 거두러 보내었노니…’라고 하셨다. 당신은 효과적이 아닌 것처럼 보이는 것에 만족해하는가? 이것이 하나님의 표준은 아니다. 그분은 열매를 기대하신다.
7. “너희가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사도행전 1잘8절)
유대는 예루살렘으로부터 약80Km이상 떨어진 곳이다. 그리고 사마리아는 유대의 북쪽경계f부터 시작하며, 예루살렘의 북쪽의 동서간의 거리는 약40Km이며 그리고 북쪽으로 45Km가량이 덧붙어 있다. 사마리아는 주변의 이방인들과 결혼했었다. 왜냐하면 느헤미야 때 유대는 사마리아인이 성전 짖는 일에 도움을 제공하기를 유대에게 제한했었으나 유대는 이러한 제안을 거절했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사마리아인은 유대와는 다른 문화와 가치관을 형성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이 유대와 크게 다른 것은 아니었다.
“땅 끝까지”는 전적으로 우리와 관계가 없는, 언어와 문화에서 완전히 다른 사람들에게 가서 증인이 되라는 것을 분명하게 의미한다. 선교학 교수인 Ralph Winter는 이것을 세 영역의 복음전파로 구분했는데, 제1단계 복음전파는 예루살렘과 유대, 제2단계 복음전파는 사마리아, 제3단계 복음전파는 땅 끝까지이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위의 3단계 중 어느 한 단계에 자신이 포함되어져 있어야 하며 우리 모든 사람은 반듯이 제1단계에는 가담해야 하며, 다른 많은 사람들은 제2단계로 부르심을 받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보다 특별하며 기술적인 면이 필요한 제3단계 복음전파의 부르심을 받는다.
8.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마가복음 16장15절)
이것은 본문에서 중요한 것으로 앞 구절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의 믿음 없음을 꾸짖으셨다. 그리고 계속적으로 말씀하셨다.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16절). 만약 그들이 14절과 같이 믿음 없음에서 불안정하다면 그들은 사람들을 믿음으로 인도하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15절은 믿음의 순종을 요구하는 것이다. 우리들 중 누구도 인간의 힘으로 이 말씀을 따를 수는 없다. 이것은 오로지 우리가 믿음의 행동에서 바라볼 때만이 이 말씀에 순종할 수 있다.
‘전파하다’는 ‘kerusso'(헬라어)로 선포하다라는 의미가 있다. 이 단어는 오늘날 라디오 방송의 아나운서가 하는 일을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9.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태복음28장 19,20절).
오직 제자만이 다른 제자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감당한 그 이상의 것을 다른 사람을 줄 수 없다. 예수님께서는 “네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치라”고 말씀하실 때 이러한 원칙을 분명하게 인식하셨다. 따라서 그는 제자들을 제자훈련의 길로 인도했으며 제자들은 똑 같은 일을 다른 사람들에게 행했다. 제자훈련의 질은 그들 자신의 삶의 질을 통해 반사되어 질 것이다.
“족속”은 오늘 날 우리가 알고 있는 한국, 일본, 중국, 영국 등 정치적인 그룹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 단어는 자신들의 언어와 문화를 지닌 ‘인종적인 그룹’을 가리킨다.
연속해서 나오는 마지막 세가지 중심을 주의하라. 증인됨 – 복음을 선포- 제자를 만듬은 각기 가른 의사전달의 모습을 나타낸다. 그리고 우리의 출발점은 개인적인 증인됨이나 우리의 목표는 다른 사람을 그리스도인으로 훈련시켜 그들이 다른 사람들을 낳게 하는 것이며, 이러한 재 창조를 계속해서 반복하게 하는 것이다.
10. “나는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중보기도 (도고)와 감사를 하되“(디모데전서 2장1절)
여기 그리스도인은 네가지 기도의 단계를 통해 세계를 품어야 한다고 하는 바울의 전세계 비전이 있다.
‘기도’는 단순히 요구하는 것이다.
‘간구’는 필요하다라는 개념에서 번역되어진 단어로 ‘기도’보다는 더 강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것은 ‘간청하다’, ‘진지하게 탄원하다’라는 의미가 있다.
‘중보기도’는 깊은 단계의 기도이다 왜냐하면 중보기도자는 하나님의 명령으로 다른 사람의 책임을 대신 짊어지며, 하나님과 사람 또는 문제 사이에 서서 기도하며, 그 기도의 응답이 될 때까지 중단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출애굽기 32장32절에 보면 모세는 이스라엘이 금송아지를 만든 사건 후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서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데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버려 주옵소서”라고 중보기도했다. 예수님은 최고의 중보기도자였다. 그는 세상의 죄를 스스로 짊어졌으며, 인류의 중보자가 되었다
“감사”는 우리가 분명한 영을 소유했으며, 그 성령이 세계를 통틀어 수많은 남자와 여자들의 삶 속에서 성취하고 계신 것과 매일 수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을 즐거워해야 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아직도 거대한 필요들이 있는 동안 우리는 성령의 위대한 역사를 즐거워하며 감사하는 일에 균형을 지켜야 한다. 지금도 지난 어느 때보다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께로 나아오고 있다.(from http://www.btc.co.za/missi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