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OMF의 선교사가 되기 전에는 고등학교에서 생물을 가르치는 교사로 일했다. 이 일은 선교사가 되기 위한 준비과정으로 선택한 것이다. 교사로서 교수방법, 사회적 책임, 계획세우는 법 등을 배울 수 있었다. 장래 선교사에게 얼마나 유용한 기술들인가! 그러나 이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몇 년 지나지 않아 나는 생물을 가르치는 일과 선교사로 일하는 것 사이에 훨씬 더 중요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하였다. 생물을 강의하면서 장래의 선교의 기초를 가르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전세계를 품는 선교에 대해 마음을 갖기 위해서는 오직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고 믿는다.
창세기 1장은 나머지 성경의 기초를 제공한다. 이 장이 없이는 우리는 인간의 타락과 하나님의 구원계획, 선교의 목표와 이유를 이해할 수 없게 된다. 이 글에서 나는 창조와 선교의 밀접한 관계에 대해 보여주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창조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에 대한 깊은 지식을 제공하며, 둘째로는 인간의 특성과 목적을 보여주며, 마지막으로 선교의 목표를 보여준다.
모든 종족을 창조하신 창조자 하나님
“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중에 거하는 자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여호와께서 그 터를 바다 위에 세우심이여 강들 위에 건설하셨도다(시24:1~2).” 모든 사람들은 비록 그들이 알라나 부처나 크리슈나(힌두교의 신)를 섬길지라도 하나님께 속한 백성이다. 히스기야 왕은 하나님께 대한 기도에서 이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그 앞에서 기도하여 가로되 그룹들 위에 계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천하만국에 홀로 하나님이시라. 주께서 천지를 조성하셨나이다(왕하19:15).” 하나님은 그들이 하나님을 섬기건 안 섬기건 간에 모든 종족의 주인이실 뿐 만 아니라 다스리시는 왕이시기도 하다. 우리는 이 사실을 깨닫고 있는가?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그분을 부정하고 있는 북한 땅의 주인이심을 알고 있는가? 이라크의 독재자 사담 후세인이 하나님의 소유임을 알고 있는가? 불교를 믿으시는 당신의 할머니가 하나님께서 만드신 작품이란 것을 생각해 본 일이 있는가? 우리가 전도나 선교에 대한 비전을 상실하는 이유들 중 하나는 우리들이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세상 전체가 아니라 교회 안으로 축소시켰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모든 사람, 모든 종족, 모든 민족이 하나님의 피조물이므로 하나님께 속하였음을 깨닫는다면, 그들과 복음을 나누는 것이 훨씬 더 자연스러운 일이 되지 않겠는가?
또한 창조는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들의 경배와 순종을 당연히 받으실 권리가 있음을 의미한다! 만약 하나님께서 그들의 창조자가 아니시라면, 하나님께 순복하라고 그들을 초청할 아무런 근거도 없게 된다. 바울은 우스드라, 아덴에서 하나님을 섬길 것을 선포하고 있다. “…너희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유를 지으시고 살아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함이라(행14:18, 17:24~28).” 왜 우리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회개를 촉구하는 것을 그렇게 어려워하는가? 우리들은 그렇게 할 권리가 없다고 느끼지 않는가? 우리들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우월감에 빠져있다는 비판을 받을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가? 하나님께서 그들을 지으신 분이시기에 그렇게 하실 권리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겠다. 그들은 하나님의 피조물인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모든 인간
모든 사람은 한 가족이다! 우리들은 모두 아담의 후손이다. 그리고 이것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차별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행10:34). 더 나아가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았다(창1:26~28). 그들은 하나님과의 조화 속에서 살아가면서 하나님을 드러내며, 사회적 관계 속에서 살아가며 하나님을 드러내며(남편/아내), 피조세계를 다스리며 하나님을 드러낸다. 그렇다. 하나님의 형상은 비록 파괴되었지만, 완전히 부숴 진 것은 아니다. 르완다의 길가에서 먹을 것을 구걸하는 흑인 어린아이를 보게 될 때 하나님의 형상을 발견하는가? 이스라엘에서 활동하는 게릴라, 그리고 당신 자신에게서 하나님의 형상을 발견하는가? 인종, 문화, 정치, 종교적인 차별들은 복음을 나누려는 우리의 갈망을 절대로 앗아갈 수 없다. 우리들은 기본적으로 똑같은 사람이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아담의 후손들이다.
선교의 목표
다음호부터는 우리가 사람의 타락과 이로 인한 구원과 회복의 필요성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우리가 선교에서 목표로 사는 것이 바로 이 회복인 것이다. 그러나 어떤 회복을 말하는 것인가? 전도지들을 읽어보면 단지 영혼의 구원만을 말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창조는 전혀 언급되지 않고 있다! 단지 그것뿐일까? 회복의 배경에는 창세기 1장, 즉 하나님의 세상 창조와 당신의 형상을 따른 인간의 창조가 있다.
첫째로 회복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의 회복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부르심의 핵심은 우상을 버리고 참 하나님만 섬길 것을 명하시는 것이다!(출20:3~4, 행14:14~15, 7:20,30). 우상숭배는 창조주 하나님을 거부하는 모든 인간의 죄악이다(롬1:21~23). 서양에서는 사람이 우상이 되었고(인본주의), 중동에서는 종교자체가 우상이 되고 있으며(이슬람교), 동양에서는 창조세계 자체가 하나님이 되고 말았다(힌두교, 정령숭배). 회개하라는 촉구는 항상 우상숭배를 깨뜨리라는 명령이었다. 하나님께서 창조자이시기에 우리들은 그분의 피조물이다. 아덴에 가득한 우상을 보고 바울이 느꼈던 분함을 당신도 느끼고 있는가? 절에서 불교도들이 불상에 절하는 모습을 보면서 당신은 무엇을 느끼는가?
둘째로 회복은 인간 안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을 의미한다.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 새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골3:9~10).” 이것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의미하지만, 단지 그것에만 제한된 것은 아니다. 이것은 인간의 사회적 관계도 회복되어져야 함을 의미한다(골3:9에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말라’는 말씀을 보라). 이것은 더 나아가 피조세계와의 관계 회복을 의미하기도 한다. 예수 안에서 우리들은 피조세계를 적절하게 다스리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히2:6~9). 우리들은 선교라는 것이 인간의 모든 관계를 포함하는 것임을 믿는다. 전도와 사회적 행동, 교회개척가와 의사를 구분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둘 다 선교에 필요한 것이다. 둘 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인간의 회복을 위해 필요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것은 피조세계 그 자체의 회복을 의미한다. 다음 글에서 우리가 보게 될 것이지만, 피조세계는 하나님의 저주 아래 놓여 있다(창3:17~19). 그리고 회복되어져야 한다(롬8:18~24). 선교에 있어 우리가 인내할 수 있도록 만드는 소망은 곧 부활, 우리 몸이 다시 사는 것,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비전인 것이다(고전15:55~58, 고후4:14~18, 계21:1~4)! 그렇다면 의료봉사, 농사일, 자연보호 등이 선교의 일부로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예수님께서는 만물이 하나님께로 회복될 마지막 때의 일들을 ‘징조’라고 말씀하셨다. 전문적인 사역을 원한다면 입국을 위해 비자를 받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 것을 기억하라. 사역은 하나님께 온 땅의 창조자이시고, 피조세계를 당신께로 회복하실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선포하는 가시적인 회복, 즉 징조인 것이다.
우리는 창세기 1장을 선교의 기초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함을 함께 살펴보았다. 창조는 하나님께서 우주의 창조자이시며, 모든 민족들의 왕이심을 깨닫게 해준다. 창조는 우리가 모든 종족들이 하나님께 순종하고 경배해야 한다고 요청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창조 안에서 우리들은 우리들을 가로막은 인종, 문화, 정치적인 장벽들을 극복하게 된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모두 아담의 후손이며 하나님의 같은 형상으로 지음 받은 자녀임을 알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창조는 선교의 목표, 즉 모든 관계 속에서의 인간의 회복과 피조세계의 해방을 보여준다. 창세기 1장의 메시지가 다시금 우리의 마음을 창조주 하나님과 우상숭배에 사로잡힌 세상과 깨어진 하나님의 형상의 회복을 향해 불타오르게 하길 원한다.♡
(선교한국, 하의진선교사)